만추의 계절, 10월 하순은 전국에서 국화축제 물결이 이어지면서 온통 화려한 꽃 대궐을 이룬다. 경기도 연천‧ 가평‧ 파주, 충북 청남대, 충남 부여, 전남 화순‧ 함평, 전북 익산‧ 경남 마산 등지에서 국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천군 국화전시회’ ‘가평 들국화전’ ‘파주 벽초지 국화축제’ ‘청남대 가을축제’ ‘부여 국화축제’ ‘월출산 국화축제’ ‘화순 국화향연’ ‘함평 국향대전’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 ‘마산 국화축제’ 등 지역마다 다채롭게 전개된다.
국화는 관상용으로 널리 재배한다. 노란색· 흰색· 빨간색· 보라색 등 품종에 따라 다양하고 크기나 모양도 품종에 따라 다르다. 꽃의 지름에 따라 18 cm 이상은 대륜, 9 cm 이상은 중륜, 그 이하는 소륜이라 구분한다.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꽃으로, 중국이 원산지인데, 많은 품종이 개발되어 270여종에 이른다.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 하여 국화차나 국화전을 부쳐 먹으며 꽃놀이를 하는 명절로 삼았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늦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피는 특성 때문에 오래 전부터 국화를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로 여겨 소중히 대했다. 선비들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조선시대에는 국화가 꽤 비싼 값에 팔렸다고 전한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띄운 편지 중에는 “국화 한 이랑만 팔아도 몇 달치 식량을 살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근현대에 들어와 장례식 때 흰 국화를 바치는 관례가 유행인데, 이는 원래 서양에서 장례식 때 흰 장미를 바치는 관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양에서는 흰 장미를 구하기 힘들어서, 대신에 흰 국화를 바쳤던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필자는 지난주 상가(喪家)에서 고인의 영전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소천(召天) 명복(冥福)을 기원하는 조사(弔詞) 한 수를 올렸다.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가 은은하게 다가온다. 그 향기를 따라가면 국화의 아름다운 자태, 그윽한 향연에 취한다. 화려한 색깔만큼이나 그 형상도 놀랍고 아름답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국화지만 올해는 더욱 반갑다. 여름 폭염이 유난히 길게 이어지면서 힘들었던 탓일까. 화사한 국화꽃 향연은 바쁜 일정에 쫓겨 계절을 잊은 사람들에게 여유와 낭만을 안겨준다.
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여긴다. 매화는 추운 겨울을 극복하고 눈 속에서도 피어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고, 난초는 심산계곡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풍겨 군자의 고고한 기품을 보여준다. 곧은 줄기에 속이 비어있는 대나무는 고고한 지조와 절개, 물욕(物慾)을 비우고 청렴함을 드러낸다. 국화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찬 서리를 이기고 꽃을 피워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는 군자처럼 여긴다.
미당 서정주는 명시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고 읊었다. 고고하고 기품 있게 서 있는 국화송이,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 엄청난 시련과 산통(産痛)을 겪어냈고, 아름다운 결실, 그 안에는 무수한 시련과 진통이 녹아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쳐준다.
‘국화꽃 송이송이 가을하늘 담아놓고/ 어영청 만추가절 보름만원 등불삼아/고운 손 갈바람으로 하늘 밭은 일구네./ 깊은 밤 내려앉은 까만 밤 아련한데/ 달안개 밤이슬에 피멍들어 지새우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생로병사 한(恨)하랴.’ 필자의 졸시 <국화꽃 향기>를 띠우며, 우리네 인생이 각박하고 힘들다 해도 삶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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