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엊그제 의대 증원과 관련해 2026년도 입학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제안한 여. 야. 의. 정 협의체 구성에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응급실을 비롯한 의료현장이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모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지금 의료 현장은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비정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방뿐 아니라 일부 수도권 대형 병원 응급실까지 제한 운영에 들어갔고,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는 실제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그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해 위기감을 키웠다. 정부와 의료계는 대화 없이 상대와 싸워 이기려고만 했다. 정부는 의료개혁은 물러설 수 없는 과제라며 정원 조정에 경직적 태도를 보였다. 응급실 진료 차질은 과장됐다며 시간만 보냈다.
일부 의사들은 큰 인명 피해나 의료대란이 일어나 정부가 백기 투항하기를 바라는 듯 했다. 전공의들은 아예 대화의 채널을 닫아버렸고, 의사협회는 정치적 구호만 외쳤다. 환자 곁을 미련 없이 떠나는 전공의들에겐 비난이 쏟아졌다.
갑자기 아프거나 다쳐도 응급의료센터로 못 가는 게 위기의 핵심인데 대통령은 응급의료센터를 둘러봤으니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환자들이 보일 리 없다. 환자 본인이 병원에 전화해 알아볼 수 있으면 경증이라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발언은 또 어떤가. 이런 불안감이 여론에도 반영된다.
최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부정평가 67%의 이유 중 1위가 ‘의대 정원 확대(17%)’였다. 의료사태 초반 압도적 지지를 받던 상황이 반전한 것이다. 최근 정부는 긴급대책으로 이대목동병원과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군의관을 배치했지만, 응급실 근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져 되돌아갔다.
아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난제가 많다. 무엇보다 의료계가 책임 있는 대표를 여.야.의. 정 협의체에 보내야 한다. 지금 의료계는 전공의와 의사협회, 의대교수, 병원협회 등으로 분열돼 있다. 누구와 협상을 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이들 단체가 대표 한 명을 뽑아 내보낸다 해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다른 측에서 거부할 수도 있다.
이번 협의체는 전공의 처우 개선과 수가 조정, 의사 사법리스크 경감 등 오랜 숙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한다. 따라서 의료계가 지혜를 모아 사태를 끝내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의사단체들은 여.야.의. 정 협의체에 대해 정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전공의들이 2025년 의대정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 입시 계획은 이미 발표된 상황이다. 사법부 판단도 거쳤다.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국민 다수 여론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2026년도 의대정원을 논의하는 게 현실적이다.
협의체가 성공하려면 서로 조건 없이 대화에 참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국민 건강이 위기에 놓인 상황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의사들이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기회를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특히 전공의들은 협의체 운영을 계기로 진료현장에 복귀해야 한다.
정부 역시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증원 자체는 대다수 의료계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2000명으로 정한데 대해 반발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말한다, 증원 자체는 필요하지만, 왜 꼭 2000명이어야 하는지 설명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왜 꼭 2000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냐는 것이다.
툭 숫자를 던져놓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결국 국민의 고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번에 여실히 보여줬다. 이제라도 어느 정도의 증원이 적절한 것인지 협의체에서 마음을 열고 논의해 결론을 내길 바란다. 정부와 의료계 정치권 모두 합리적 대안을 내고 서로 타협하는 것이 그간 고통을 감내해온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 <저작권자 ⓒ 오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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