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일보

연저지인(吮疽之仁)의 두 얼굴, 유권자가 가려내야

임은순 | 기사입력 2023/11/06 [14:10]

연저지인(吮疽之仁)의 두 얼굴, 유권자가 가려내야

임은순 | 입력 : 2023/11/06 [14:10]

▲ 전의식 전)서울신문사부국장
현)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요즘 국회가 정부 각 부처 및 산하 단체를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펼치고 있다. 이번 국감은 창을 든 여야 의원들의 공세가 유난히 느슨해 보이고 각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리들의 방패도 예년보다는 긴장감이 떨어져 보인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제21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막바지이고 내년 4월10일에는 새로이 총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4년마다 늘 겪는 일이지만 각 지역의 정치인들은 이맘때가 되면 피가 마른다고 표현할 정도로 초조해진다. 현역의원이나 정치 신인들도 지역을 오가는 주민들이 한 표로 보이는지, 초면의 사람이라도 살갑게 악수를 청하거나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건넨다.

 

이런 어색한 장면들을 마주쳤을 때 떠오르는 인물은 중국 한나라의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에 등장하는 오기(吳起)라는 무인이다. 그는 전장에 나갈 때 병사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자신의 식량도 손수 짊어지고 다니면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장수였다. 몸에 심한 종기가 난 병사가 있으면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일도 서슴지 않아 ‘연저지인(吮疽之仁)’이란 고사성어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오기에게는 이런 긍정적 모습과는 달리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인륜을 외면하고 잔인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은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초기에 위나라에서 태어난 오기는 자신을 비웃는 이웃 주민들을 살해하고 노나라로 도주해 증삼(曾參)의 문하생이 되었으나 모친 장례식도 외면하는 불효를 저질러 파문을 당했다. 어쩔 수 없이 학문을 포기하고 병법 연구에 몰두해 손자에 버금가는 병법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어느 해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략했을 때 노나라 왕은 적군에 맞서 싸울 장수로 오기를 임명하려다가 그의 처가가 제나라 사람이라 망설이자 오기는 자신의 칼로 아내를 직접 죽이는 전대미문의 충성심을 보여 기어코 장군 반열에 올랐다.

 

목적을 위해서 위선적 행동도 마다하지 않은 오기는 말년엔 초나라로 옮겨가 재상 자리를 얻었으나 얼마 후 반란군 화살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당한다. 이런 연유로 ‘연저지인’은 순수한 부하 사랑만이 아니라 무언가 숨겨진 목적을 가지고 선행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이고 있다.

 

이제 총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국정감사를 마치고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면 말 많고 탈 많은 21대 국회는 파장이나 마찬가지 상태로 빠져든다. 이미 거대 양당은 중앙당과 지역당 조직을 총선준비 태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따라서 현역의원들은 재공천을 받기 위해 당 지도부의 눈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려고 동분서주할 것이고 정치 초년생들은 자신의 지역구를 찾아내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이다. 또 선배 정치인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새벽 시장을 찾아가 먹거리 장면을 보여주거나 지하철과 버스정류장 입구에서 세상 겸손한 자세로 한 표를 읍소할 것이다.

 

우리 정치가 바로 서려면 초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써온 후진적 선거운동 방식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야 한다. 선거 날까지는 유권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다가 당선만 되면 지역의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장면을 우리는 적지 않게 목격해 왔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의 의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 선거철에만 끝없이 낮아지는 후보자보다는 신념이 단단한 정치인을 찾아내야 한다. 앞뒤가 다른 두 얼굴의 정치인이 자신과 동향이라고, 학연이 있다고 무조건 지지하는 ‘묻지마 투표’를 계속한다면 우리나라의 정치개혁은 여전히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유권자들은 ‘연저지인’이란 단어 하나가 던지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할 선택의 시간을 앞두고 있다. 좋고 나쁜 정치인을 가려내는 것은 투표권 한 장만을 가진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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